감정의 짐과 책임은 타인에게 던지는 H의 구조
결정은 하지 않으면서, 감정만 쏟아내는 감정 쓰레기통형
친근하고 정겨운 감정 공유가 어느 순간부터 기대와 의존으로 변해갔고,
그 무게는 오롯이 내 몫이 되어 있었다
의존은 깊지만 책임은 없다
사람 사이에는 분명 심리적 거리라는 게 있다
가깝다는 건 감정을 나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때때로는 감정을 전가당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H는 처음엔 굉장히 따뜻하고 친근한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따뜻하고, 공감도 잘해주고,
육아로 버거운 워킹맘의 삶을 함께 나누며, 누구보다 진심으로 서로의 고충을 이해해 주는 것처럼 보였으니깐
그래서 빠르게 가까워졌고,
심지어 가족들까지 자연스럽게 어울릴 정도로 주말마다 자주 만나며 지냈다
하지만 이상하게, 관계가 깊어질수록 점점 피로해졌다
친근하고 정겨운 감정 공유가 어느 순간부터 기대와 의존으로 변해갔다
H는 내게 "언니 같아요", "친정처럼 너무 의지가 돼요" 같은 말들을 자주 했고,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책임감과 보호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떠안게 되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이 감정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암묵적인 감정 위탁이 계속됐고
그 기대는 내게 버거운 무게로 쌓여갔다
반복되는 "힘들다"의 감정 공세
H는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요즘 너무 우울해요", "진짜 못 버티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꺼냈다
물론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H의 말에는 언제나 행동의 책임은 타인에게 미루고,
감정의 공감만 가져가려는 구조가 있었다
예를 들면, H가 워킹맘으로 받는 부서 내 불이익에 대해서 어려움을 토로할 때
회사에서 버티기 어려워하는 H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내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너무 티 안 났으면 좋겠다"
"현재 근무 중인 부서 내에서 눈치 보이지 않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라고 감정만 전달했다
즉, 조율은 해달라고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자기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이중성이 불편했다
조용히 옮기고 싶다면서, 동시에 내게는 조용하지 않은 해결을 요구했고,
감정은 앞세우면서도 스스로 결정하거나 책임지는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점점 좁아지는 숨 쉴 공간
아이들끼리도 친하다 보니 주말에도 자주 만나고, 서로 집도 오가고,
가족끼리 어울리는 관계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초반에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워킹맘이라는 점에서 위로도 되었고,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관계가 나를 지지해 주는 관계가 아니라
나를 기대는 구조가 되어버렸다는 걸 느꼈다
특히 H는 자주
"진짜 숨 좀 쉬는 것 같아요, 오늘은 살아있는 기분이에요"
"덕분에 진짜 살았어요, C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이런 말들을 매번 반복적으로 했고, 그 말들이 점차 나를 감정적으로 떠받치게 하는 프레임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고마웠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나는 마치 누군가의 생존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공동육아는 같이 나누는 시간이어야 했지만,
H와 함께 있을수록
나는 내 감정을 꺼낼 수 없고, 위로해 주고 책임져줘야 하는 구조 속에 갇히는 기분이었다
H는 '숨 돌린다'며 편안해하는데, 나는 점점 숨이 막혀가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아이와의 시간도, 엄마로서의 휴식도,
모두 H를 배려하고 맞춰주는 시간이 되어버렸고,
공감은 어느새 의무로, 감정은 짓눌림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었고, 상황이 그렇게 된 거예요
결국 나의 적극적인 조율 끝에 H는 우리 부서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도 마치 본인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는 듯이
"C님이 적극적으로 추진해 줘서 설득돼서 옮기게 된 거예요"라는 태도를 유지했다
나는 그게 더 지쳤다
H는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나는 도움을 준 사람이 아니라 이 상황을 만든 사람으로 남았다
부서 이동을 진심으로 원했고,
일정이 늦어지면 "조금만 더 밀어봐 줄 수 없을까요?"라며 은근한 압박도 주었다
그런데도 책임은 일관되게 나의 몫이었다
결정적으로, 업무 적응의 어려움을 겪었을 때의 행동으로 내 신뢰를 깨트렸다
파트장님께 3번이나 '의견은 안 바뀔 것 같아요, 퇴사할게요'라고 말해놓고도
정작 나에게는 퇴사 결정에 대한 어떤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퇴사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나서야,
장문의 메시지로 '급하게 정리하게 돼서 속상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늘 마지막이 될 줄 몰랐는데 갑자기 정리하게 되어 너무 속상했어요"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하지만 그 사이에도
퇴사 사실은 부서 사람들에게 철저히 숨기고 있었고
퇴사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미팅도 참석하고, 교육도 받고, 사람들에게 퇴사 분위기를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심지어 나에게조차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업무를 못 배우겠어요.."라고
끝까지 '이 상황은 내가 감당할 수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고 포장했다
그 구조가 너무 익숙했다
감정은 본인의 몫이고, 결과와 책임은 내 몫
마치 '자기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로 모든 선택에 대한 무게를 끝까지 외면한 채 사라지는 사람
감정 스캔 - 감정 쓰레기통형 회피자
나는 감정적으로 너무 힘든 사람이 다라는 정체성이 강하다
자신이 겪는 고통을 감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타인에게 보호자 역할을 유도하고 감정의 짐을 함께 지게 만든다
-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는 데 능하지만, 감정을 스스로 수습하지는 않는다
- 감정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이나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다
- "언니 같아요", "없었으면 진짜 무너졌을 거예요" 등으로 정서적 부담을 상대에게 투영한다
- 상대가 들어주지 않으면 냉정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감정적 죄책감을 유발한다
- 결정은 직접 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언행을 반복한다
- 일이 잘못되면, "상황이 그냥 그렇게 된 거예요" 식으로 책임을 흐리고 빠져나간다
- 관계 안에서 계속 도움을 받으면서도, 스스로는 단 한 번도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런 구조의 사람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조작'한다
표현을 통해 상대의 정서적 책임을 유도하고,
도움을 주지 않으면 상대가 나쁜 사람처럼 느끼도록 구조를 만든다
감정스캔의 결론
나는 감정을 나누는 관계를 좋아한다
하지만, 감정을 나눈다는 것과 감정을 전가당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H는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탁월했지만,
그 감정을 관리하거나 책임지는 능력은 전무했다
감정은 일방적이었고, 관계는 점점 한 사람만 지치게 만드는 비대칭 구조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힘들다"는 말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 감정을 계속 들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척하지만 결국 책임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하되, 내 감정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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